유감스런 김기남 의원, 재선?
유감스런 김기남의원
김기남 의원은 왜? 정치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더불어 민주당의 후보로 재선에 도전하고 있지만, 정치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정말 더럽고, 치사하게 배운 젊은 갈라치기 의원이 될 자질이 너무나 풍부한 인자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정치는 “정당정치”가 기본이고, 정당정치의 내용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기초로 하여 그 내용은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제도,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하며, 이 기본질서는 기자의 개똥철학으로 지껄이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일관적인 태도로 결정을 하고 있는 판례이다.
이에 의해 정당정치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의사형성의 참여”가 기본적이어야 하고 이는 자유민주주에 의해 자유, 평등, 관용, 선거제도가 정당정치의 기본이 된다.
정치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관용(toleration)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관용은 나와의 생각의 다름을 전제로 하고 나를 지지하거나 나를 지지하지 않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포용에 의한 관용을 말한다, 관용의 정치를 주장한 프랑승의 정치학자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을 때 까지 싸울 것이다”.고 말하면서 나를지지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도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 관용을 주장한다.
이는 오늘날의 정치형태인 다원주의정치 형태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김기남 의원은 기자가 김기남의원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기사화 한 것 때문인지 기자의 “전화는 받지 않는다”
너무 천박한 정치인이다. 김기남 의원이 잘 못하는 정치는 당연히 기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야 한다. 기자를 광고비로 유혹을 하려고 했던 것을 기사화 한 것이 잘 못 된 것인가?
김기남 의원은 무오류의 신(神)인가? 신이라면 실수도 하지 않고, 실패도 하지 않았어야 한다. 그러나 기자에게는 실패를 한 것이 아닌가? 본보가 광고를 받지 않고 신문사를 운영하는 것이 김기남 의원에게 아니꼬울 정도의 언론사인가? 김기남 의원의 기사를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그 천박한 인식을 비판한 것을 수인할 수 없을 정도의 간장종지보다 작은 정치적 그릇을 갖고 어떻게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기자가 광고비 몇푼 받아서 김기남 의원에게 우호적인 기사를 쓰지 않고 비판하는 기사를 쓰는 기자는 문자도 받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이 정치인으로 온당한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는가?
못 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옛말 틀린 것 없다. 김기남 의원에게 충고한다. 정치인이기 때문에 실수도 할 수 있고,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자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기자도 시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당신처럼 거만하고 천방지축의 천박한 의원을 감시하는 것은 기자들의 몫이다.

어디서 정치를 배웠는지 더럽게 배웠고, 당협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천박한 내면을 갖고 있는 의원에게 공천의 기회를 제공한 것도 문제가 있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절차에 참여”하게 해야 하는 것이 정당이다.
더불어 민주당의 김대중, 노무현의 정신은 더럽고, 아니꼽고, 치사하고, 꼬라지 보기 싫어서 세상을 바꾸어 보자고 당원들이 입당하는 것이다. 당신처럼 오만하고, 거만하고, 더럽게 정치를 배워서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재선을 더욱더 공고히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님을 잊지마라!
당신은 나를지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화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갈라치기”를 하는 천박한 정치인에 불과하다.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게 어차피 시민들을 알 권리가 있으니까!
<저작권자 ⓒ 울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용식 기자 다른기사보기
